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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백과 자각

10년 전 그리고 지금, 너와 나

cestmoichaeyoung 2021. 8. 21. 22:1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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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서로 문자를 주고 받다가, 하루는 나에게 '넌 참 답장을 할 말 없게 보낸다'며 볼멘소리를 하던 친구. 평소에 남에게 싫은 소리 절대 안하는 걸 잘 아는데 내게 이런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답답했을까 미안했던 마음. 문자 한 통 한 통이 참 귀하던 때였으니 그럴만도 했다.

수학 공부를 마치고 영어 학원에 가려면 20분을 걸어야했던 그 때, 철부지인 내가 신나게 길을 걸어가면 뒤에서 묵묵히 날 따라오던 친구.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나를 쫓아오던 그 눈빛. 주머니에 넣었던 손과 항상 신던 슬리퍼까지. 추운 날이면 따뜻한 캔커피를 내게 건네던 예쁜 마음.

어느 날 훌쩍 캐나다로 떠나버린 나를 긴 시간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다려줬다. 스카이프로 국제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던 날들. 천방지축이던 그때의 나는 네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을까? 오랜만에 부산에 눈이 많이 내렸다며 보내 준 사진 속에 써진 글씨. 친구가 나를 부르던 애칭이 눈 위에 커다랗게 써 있었다.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애틋한 마음이 커져서일까, 내가 돌아온 이후 친구는 애정 표현이 많아졌었다. '이제와서 말하지만, 나 그때 너 기다리느라 정말 힘들었어' 얼마 전 말하던 친구의 뒤늦은 고백까지.


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나를 보러 우리 학교까지 와주던 친구. 학교 뒤편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. 손을 잡고 옆에 꼭 붙어 앉아 있다가, 지나가시던 선생님께 들킨 적도 있었다. 친구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던 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. 생각해보니 그 때 친구는 고 3이었는데, 새삼 미안하네. 내가 갔어야 하는 건데.


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것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하던 친구. 사진을 전공하고 싶다던 친구는 대학 입학 전 나에게 필름 카메라를 선물해줬었다. 그때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지만. 이제야 알 것 같은 건, 그게 작별인사였을까?


다시 만난 친구는 지그시 내 눈을 바라봐 주었다. 이전엔 안경 속에 가려져 있던 그 예쁜 눈. 부끄러워서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. 말수도 조금 늘어서 내 말에 호응도 잘 해줬다. 이젠 재미없는 친구 대신 나 혼자서만 재잘거리지 않아도 되었다.


지하철역에서 '언제 다시 또 보지' 묻던 친구. 그때보다 많이 자랐다고 자부하면서도, 늘어난 건 '겁' 뿐인 나의 초라함. 그리고 여러 생각들이 겹쳐지는 저녁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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